대학가 점령한 PDF 교재…구매만 해도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당초 A씨는 학교 서점에 가 실물 교재를 구매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재를 구매하기 위해 서점에 간 A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교재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는 A씨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는데요.

A씨의 이야기를 들은 대학교 동기들은 A씨에게 실물 교재 대신 PDF 교재를 구매하라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동기들은 PDF 교재가 원본 교재보다 훨씬 쌀뿐만 아니라 휴대하기도 편하다며 PDF 교재 구매를 추천했는데요.

PDF 교재는 책으로 된 원본 교재를 스캔해 PDF 파일 형태로 저장한 것을 말하는데요. 실물 교재 대신 태블릿 PC나 노트북 등에 저장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들의 솔깃한 제안을 들은 A씨는 곧바로 대학교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 PDF 교재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씨가 원하는 과목의 PDF 교재를 판매한다는 익명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결국 A씨는 싼값에 PDF 교재를 구매했는데요.

개강 당일 A씨는 PDF 교재를 다운로드한 태블릿 PC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A씨는 첫 수업 도중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당황을 금치 못했습니다. 바로 “PDF 파일 형태로 변환된 교재는 불법 무단 복제 파일이니 모두 강의에 실물 교재를 지참하라”는 것이었는데요.

이러한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A씨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주변 동기들의 조언을 들었을 뿐 PDF 교재가 불법 복제 파일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A씨는 정말 자신이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인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A씨처럼 PDF로 변환한 교재 파일을 거래하는 것이 대학가에서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한 번쯤은 PDF 교재를 구매하거나 판매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PDF 교재는 대학생들 사이에 당연시돼고 있습니다.

이런 PDF 교재 거래는 에브리타임과 같이 대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PDF 파일을 구하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PDF 교재를 필요로 하는 구매자는 ‘XX과목 PDF 교재 파일 판매합니다’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올린 판매자에게 쪽지나 댓글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PDF 교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PDF 교재가 불법 복제물이라는 점입니다. A씨 사례처럼 무단 복제된 PDF 파일을 거래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이는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인데요. 허락없이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위반으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창작자의 독점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저작권법을 두고 있습니다.

저작권법 제136조 1항에 따르면 저작재산권이나 그 밖에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를 복제 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혼자 사용하기 위한 저작물 복제는 '합법'…PDF 교재 구매는 '불법'

교재 등 창작물을 복제하는 행위 자체가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30조는 영리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저작물 복제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따라서 타인의 저작물을 복제해 돈을 받고 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실물 교재를 구입한 학생이 교재를 더 편리하게 휴대하기 위해 교재를 PDF 파일로 복제한 후 이를 판매하지 않고 본인만 사용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반대로 A씨 사례처럼 복제물을 판매하는 행위는 명확한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A씨는 어떨까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할까요? A씨는 직접 원본 교재를 무단 복제한 당사자가 아닙니다. 또한 A씨가 PDF 파일을 구매한 것은 영리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 사용을 위해서였는데요. A씨처럼 개인적 사용을 위해 불법 복제 파일을 구매해 소지한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할까요?

저작권법

[시행 2023. 11. 17.] [법률 제19410호, 2023. 5. 16., 타법개정]

제30조(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다만, 공중의 사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된 복사기기, 스캐너, 사진기 등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복제기기에 의한 복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20. 2. 4.>

결론부터 말하자면 A씨의 행위 역시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이윤 창출이 아닌 개인적 사용을 목적으로 PDF 파일을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PDF 교재 구매 행위는 엄연한 불법인데요.

저작권법 제30조에서 허용하는 개인적 이용을 위한 저작물 복제는 실물 저작물을 정당한 대가를 주고 이미 구매한 사람이 사적으로 해당 저작물을 복제하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지, A씨처럼 실물 저작물 없이 복제된 저작물을 사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유사한 판례를 통해서 A씨의 행위에 불법의 소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지난 2008년에는 저작권 제30조의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 허용에 따라 저작권자의 이용허락 없는 영화 파일을 개인용 하드디스크나 웹스토리지에 저장하는 것 또한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재판이 이뤄졌습니다.

해당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아무리 개인적 이용을 목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불법 복제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행위는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영화 파일이 명백히 저작권을 침해한 파일인 경우에까지 이를 원본으로 하여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가 허용된다고 보게 되면 저작권 침해의 상태가 영구히 유지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길 수 있으므로 다운로더 입장에서 복제 대상 파일이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 파일인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면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판단의 이유였는데요.

아직까지 PDF 교재 구매나 다운로드와 관련해 명확한 판례가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복제물 다운로드를 저작권 침해로 본 법원 판례가 있는 만큼 PDF 교재 구매 역시 불법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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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알면서도 PDF 교재 거래하는 학생들

한편 교재 무단 복제의 위법성에도 불구하고 불법 PDF 교재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의 발달로 그 건수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는데요.

구입한 실물 교재를 복사 후 제본해 이용하던 과거 대학생들의 방식과는 달리 요즘 대학생들은 실물 교재를 스캔한 후 PDF 파일 등 디지털 형식으로 복제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판매·유통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불법 복제에 필요한 시간은 크게 단축됐고 판매와 유통에 필요한 노력은 크게 줄었는데요. 더 쉽고 빠르게 복제해 더 많이, 더 쉽게 판매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이러한 교재 무단 복제를 막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단 복제 교재 거래가 빗발치는 신학기 철마다 대학가의 복사업소 및 셀프 스캔 방이나 중고거래 플랫폼 등을 집중 단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에게 불법 PDF 교재의 위법성을 알리기 위한 저작권 침해 예방활동 등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작년 3월16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한국학술출판협회, 한국저작권보호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학가에 만연한 불법복제 및 스캔을 근절하자는 캠페인을 개최했다. / 사진 = 뉴스1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단 교재 복제를 근절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재 복제의 건수가 많고 복제가 암암리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불법 복제 교재 거래를 일일이 단속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PDF 교재 거래의 위법성을 알린다고 하더라도 이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PDF 교재를 거래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학생들은 무단 복제 교재의 저렴한 가격과 휴대의 용이함을 이유로 거리낌 없이 PDF 교재를 거래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대학생 B씨는 인터뷰를 통해 “PDF 무단 복제가 불법인 것은 알지만 실물 전공서적 구매에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 데다 전공 책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내용 전부가 아닌 일부만을 이용하는 정도”라며 PDF 교재를 찾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명확한 불법 인식에도 불구하고 무단 복제와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건데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이서현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